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슐리외 추기경 (문단 편집) === 군주(루이 13세)와의 관계 === 오늘날 리슐리외에 대한 평가는 '''절대 왕권의 기초를 확립하고 근대 국가로서의 [[프랑스]]를 세운 인물'''이며 화폐 개혁 이전에는 [[프랑스 프랑|프랑]] 화폐에 등장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그 업적과 존재감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주군인 [[루이 13세]]가 평가절하당하는 일도 많다. 심지어는 루이 13세와 [[루이 14세]] 시대의 비교 연구서 제목이 《리슐리외 [[추기경]]과 루이 14세 시대》일 지경이다. 근세판 [[오토 폰 비스마르크|비스마르크]] 재상과 [[빌헬름 2세]] 정도? ~~그래도 루이 14세는 나라가 망하게 하진 않았다.~~ [[루이 13세]]와는 신하와 주군의 관계지만 여러모로 미묘한 데가 있다. [[루이 13세]]는 리슐리외를 크게 신임하여 중임을 맡겼지만 한편으로는 리슐리외의 권력과 정책에 불만도 가지고 있어서, 면전에서 비꼬거나 주변 신하들에게 험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실제로 리슐리외를 내쫓으려는 생각도 몇 번인가 한 듯하다. 일설에는 리슐리외 암살 음모를 묵인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가면 루이 13세도 죽을 때까지 리슐리외를 지지했고, 그와 절친한 친구가 되어 사적인 일까지 털어놓을 정도가 되었는데 생전에도 여러가지 시시콜콜한 문제도 상담하기도 했다. 정말로 사사로운 것 가지고 리슐리외의 애를 많이 먹였는데, 심지어는 애인과 싸우고 징징거리는 단골대상이 리슐리외였다. 그래서 [[루이 13세]]가 애인과 불화가 생기면 그 중재도 리슐리외가 다 도맡아 해야 했다. [[루이 13세]]와 남자 총신 사이의 중재도 많이 했는데, 그 빈도가 하도 잦아서 나중에는 리슐리외가 아예 각서를 작성해서 둘이 서명하게 하기까지 했다. 나랏일도 힘든데 왕의 사생활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했던 셈. 리슐리외 본인도 [[루이 13세]]에게 절대적으로 충성을 다했고 사망할 때도 자신의 재산 일부를 왕 앞으로 남겼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왕을 완전히 믿지는 않아서 항상 [[루이 13세]]가 자신을 암살하지 않을까 의심했다. 왕이 자신을 부를 때면 혹시 암살하려는 게 아닐까 의심해서, 미리 염탐해 상황을 확인한 후에야 호출에 응한 일도 몇 번 있을 정도다. 이쯤 되면 둘 다 능구렁이급이다. 진짜로 애증이 있었던 듯하다. 한편, 둘 다 성격이 음침하고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서로 통하는 데도 있었던 모양이다. [[루이 13세]]는 리슐리외의 임종까지 지켜보았는데,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두 사람 다 몸이 너무 아파서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를 해야 할 정도였다.[* 실제로도 리슐리외가 죽고 얼마 안 가 루이 13세도 사망했다.]~~그래도 굳이 침대에 누워서라도 임종을 지켜본 거 보면 애증이긴 했는듯~~ [[루이 13세]]의 [[왕비]] [[안 도트리슈]]와는 사이가 매우 나빠서 적대관계였다. 사실 초기에는 안 도트리슈와 [[루이 13세]]의 결혼을 리슐리외가 찬성했으며, [[프랑스]]로 온 안의 [[고해성사|고해신부]]였던 것도 있어서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안이 점점 [[에스파냐]]의 첩자 노릇을 하고, 리슐리외도 프랑스의 적인 [[합스부르크]]를 무너뜨리려 하면서부터 적대관계가 되었다. 리슐리외는 안의 첩자 노릇을 알고는 안을 철저하게 감시했으며, 실제로 그녀에게 수모도 여러차례 주었다. 사실 안이 했던 여러 행위가 중대한 반역행위였기 때문에, 이렇게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이와 별개로 안을 보호해준 것도 리슐리외였다. 특히 [[루이 13세]]도 애초부터 안 도트리슈와 정략 결혼한데다가 그녀가 첩자 노릇을 한다는것을 리슐리외를 통해 알게되어 싫어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리슐리외의 중재와 보호가 없었다면, 안 도트리슈는 진즉에 왕비에서 폐위되거나 추방당하거나 감금당했을 것이란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다만 [[루이 14세]]를 낳은 뒤에는 안도 [[프랑스]]에 대한 적대행위를 그만두었고, 자신과 아들의 안전을 위해 리슐리외에게 고개를 숙이면서부터는 관계가 약간 호전되었다. 후에 안 도트리슈 왕비가 아들의 [[섭정]]이 되었을 때 실권을 휘두른 것이, 리슐리외가 안에게 소개해 준 [[쥘 마자랭]]이었다. 이쪽도 나름 애증이라 볼 수 있을듯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